
식물을 처음 분갈이할 때, 나는 흙이 다 거기서 거긴 줄 알았다. 마당 한쪽에서 퍼 온 흙에 스킨답서스를 옮겨 심었는데, 며칠 지나니 흙에서 날벌레가 끓고 물을 줘도 빠지질 않아 뿌리가 물러버렸다. 알고 보니 바깥 흙은 너무 단단하게 뭉치고 벌레 알도 섞여 있어서, 화분 속 식물에겐 오히려 독이었다. 흙을 바꾼 뒤로 같은 식물이 거짓말처럼 잘 자라는 걸 보고, 화분 흙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걸 실감했다.
그 뒤로 3년간 여러 흙을 사보고 섞어보며 식물마다 어떤 흙이 맞는지 정리하게 됐다. 흙 이름이 너무 많아 처음엔 나도 헷갈렸는데, 몇 가지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다. 분갈이 흙 앞에서 막막했던 분들을 위해, 상토 고르는 법과 내가 쓰는 배합을 풀어본다.
화분 흙은 정원 흙과 다르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건, 화분에 쓰는 흙은 바깥 정원 흙과 다르다는 점이다. 마당이나 화단의 흙은 양이 많고 무거워서, 좁은 화분에 담으면 물을 머금은 채 잘 마르지 않는다. 그 상태가 오래가면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썩는다. 게다가 바깥 흙에는 벌레 알이나 잡초 씨가 섞여 있어 실내로 들이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그래서 화분에는 가볍고 물 빠짐이 좋도록 만든 전용 흙을 쓴다. 흔히 '배양토'나 '상토'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처음엔 이름이 복잡해 보여도, 결국 핵심은 두 가지다. 물을 적당히 머금되 남는 물은 잘 빠질 것.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흙 고르기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
초보는 시판 배양토 한 포대로 시작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면, 원예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실내용 배양토'나 '분갈이 상토' 한 포대면 충분하다. 이런 시판 흙은 여러 재료를 미리 알맞게 섞어둔 거라, 초보가 따로 배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실내 식물에 무난하게 맞는다. 나도 처음 1년은 시판 상토만 썼고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포대를 고를 때 '분갈이용'이나 '실내 식물용'이라고 적힌 걸 고르는 게 좋다. 텃밭용·정원용은 너무 무겁고 비료가 강해 화분에는 맞지 않을 때가 있다. 한 포대를 사두면 작은 화분 여러 개를 갈 수 있으니, 욕심내서 흙을 직접 배합하기보다 우선 시판 상토로 감을 잡는 걸 권한다.
물 빠짐을 살리는 마사토와 펄라이트
시판 상토에 익숙해지면, 식물에 맞게 흙을 손보고 싶어진다. 이때 가장 많이 쓰는 게 마사토와 펄라이트다. 둘 다 흙 사이에 빈틈을 만들어 물이 잘 빠지고 공기가 통하게 해준다. 과습으로 식물을 자주 죽였다면 이 둘을 섞는 것만으로 실패가 확 준다.
마사토는 작은 돌처럼 단단해서 무게가 있고 배수에 좋다. 펄라이트는 하얗고 가벼운 알갱이인데, 화분을 가볍게 유지하면서 통기성을 높인다. 나는 과습이 걱정되는 식물엔 상토에 마사토나 펄라이트를 두세 줌 섞어 물길을 터준다. 화분 바닥에 마사토를 한 층 깔아주면 배수 구멍이 막히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보습이 필요할 때 코코피트와 피트모스
반대로 물을 좋아하는 식물에겐 수분을 오래 잡아주는 재료가 필요하다. 코코피트와 피트모스가 그 역할을 한다. 코코피트는 코코넛 껍질로 만든 가벼운 흙으로, 물을 잘 머금으면서도 통기성이 나쁘지 않아 내가 즐겨 쓴다.
고사리나 칼라데아처럼 흙이 마르면 금방 처지는 식물엔 상토에 코코피트를 조금 더 섞어 보습력을 높인다. 다만 보습 재료를 너무 많이 넣으면 흙이 늘 축축해 과습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양 조절이 중요하다. 결국 마사토 같은 배수 재료와 코코피트 같은 보습 재료의 비율을, 식물 성격에 맞춰 저울질하는 게 배합의 핵심이다.
식물별로 흙을 다르게 섞는다
정리하면 나는 식물 성격에 따라 흙을 이렇게 나눈다. 다육이나 선인장처럼 건조를 좋아하는 식물은 상토에 마사토와 펄라이트를 넉넉히 섞어 물이 쪽쪽 빠지게 한다. 흙보다 돌이 많다 싶을 정도가 오히려 잘 맞았다.
고무나무·몬스테라 같은 일반 관엽은 시판 상토에 펄라이트를 약간 섞는 정도면 충분하다. 물을 좋아하는 고사리류엔 코코피트를 더해 보습을 높인다. 허브는 물 빠짐이 좋은 흙을 좋아해서 상토에 펄라이트를 섞어 쓴다. 이렇게 식물의 고향 환경을 떠올리며 흙을 맞추면 실패가 줄어든다.
쓰던 흙, 다시 써도 될까
분갈이를 하다 보면 쓰던 흙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시 쓸 수는 있지만 그냥 쓰면 안 된다. 한 번 식물을 키운 흙은 양분이 빠지고 뿌리 찌꺼기나 벌레 알이 남아 있을 수 있어서다. 나도 쓰던 흙을 그대로 재사용했다가 새 화분까지 날파리가 옮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쓰던 흙을 햇볕에 며칠 바싹 말려 벌레와 곰팡이를 줄인 뒤, 새 상토와 반반쯤 섞어 쓴다. 마사토나 펄라이트를 새로 더해 굳은 흙을 풀어주면 물 빠짐이 한결 살아난다. 다만 병들어 죽은 식물이 있던 흙은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안전하다. 흙도 한 번 쉬게 했다가 손봐주면 다시 제 몫을 한다.
흙은 식물의 절반이다
여러 번 흙 때문에 식물을 보내고 나서 내린 결론은, 흙은 그냥 식물을 세워두는 받침이 아니라 뿌리가 사는 집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물과 빛을 잘 맞춰도 흙이 안 맞으면 뿌리가 고생하고, 반대로 흙만 잘 골라줘도 식물이 알아서 잘 큰다. 물주기를 아무리 신경 써도 늘 비실대던 식물이, 흙을 바꿔주자 두어 주 만에 새잎을 내미는 걸 나는 여러 번 봤다.
처음부터 어렵게 배합할 필요는 없다. 시판 상토로 시작해, 과습이 걱정되면 마사토·펄라이트를, 보습이 필요하면 코코피트를 더하는 정도만 익혀도 충분하다. 다음 분갈이 때 흙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내 식물이 건조를 좋아하는지 물을 좋아하는지부터 떠올려보시길 권한다. 그 한 가지만 잡아도 흙 고르기가 한결 쉬워진다. 나도 흙을 이해하고부터, 분갈이가 더는 두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